구원파는 신구약 성경은 모두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못됨이 없다고 믿는다. 그런데 성경을 예언서로 취급한다든지 구원받는 도구로 사용한다는 것 등을 운운함에 대해서는 반박을 하는 것조차 무의미하다. 굳이 반박한다면 몇몇 이단 감별사들이 아무런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 채 비방을 위한 비방만을 일삼았으며, 이러한 주장들이 검증없이 교계에 받아들여져 인용됨으로 인해 왜곡된 내용들이 구원파의 교리인 것처럼 전해져 왔다는 사실이다.

또한 구원파에서 전도를 시작한 초기에 전도인들이 신문 내용을 인용해 설교를 전한 사실을 확대, 왜곡하여 ‘제2의 경전’ 운운함은 이단 만들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밖에는 해석할 수가 없다. 성경을 우화적으로 해석한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구원파가 아닌 다른 교단을 예로 들면서 기독교복음침례회도 싸잡아 비방을 하고 있는데 참으로 악의적인 비방이 아닐 수 없다.

이미 고인이 된 권신찬 목사의 10편 짜리 비디오 설교 “성경은 사실이다”는 현재 20여 개국 언어로 더빙되어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지고 있다. 이를 시청한 사람들 중에 “하나님”, “예수님”을 전혀 모르다가 성경은 어떤 우화가 아니라 정말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온 사람들은 참으로 많다. 또 나름대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지만 이전의 신앙이 임의적인 성경 해석에 의하여 막연한 종교적인 관념으로 믿어 왔었다는 사실을 뉘우치고 참으로 하나님의 존재와 예수님의 은혜를 알게 되었다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구원파가 핍박을 받는 근본 원인들 중의 하나는 성경을 적당히 우화적으로 넘어가지 않고 오히려 거의 해석 없이 문자적으로 믿는데 있지 않은가 생각된다. 예를 들면 구원파의 설교자들이 매우 중요하게 설교하는 성경 속의 “이스라엘”은 절대로 “영적 이스라엘”로 해석하거나 상징적인 어떤 나라로 보지 않는다. 성경의 이스라엘은 역사적으로 사실인 이스라엘 그대로라고 믿고 있으며 예수님이 “이스라엘 왕”이라고 한다면 그대로 재림하시는 예수님, 곧 그날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시 2:6) 하신대로 “이스라엘 왕”으로 오실 것을 문자 그대로 믿는 것이 구원파 사람들의 신앙이다.

우화적으로 해석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이는 정통 교회라고 하는 일반교회와 이간시키려는 비방에 지나지 않는다. 구원파 성경이 성령과 성경 안에서 성경으로만 해석됨을 믿고 있다.

성경해석과 관련된 설교는 아래와 같다.

1998년 10월 25일, LA 미주수양회 강연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함으로써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신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좀 더 깊이 알아갈 수 있습니다. 왜 부르셨을까, 무엇 때문에 부르셨을까. (중략) 예수께서 일찍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했다는 이 말에 대해서 우리는 사는 동안 어느 정도나 알고 있는가. 성경은 말합니다. “사랑의 깊이와, 높이와 사랑의 넓이를 알라” 그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단행본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p.217~219
“이 모든 것을 이같이 예비하였으니 제사장들이 항상 첫 장막에 들어가 섬기는 예를 행하고 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 년 일 차씩 들어가되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 이 피는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것이라”(히브리서 9:6-7)
지성소에는 대제사장이 일 년에 한 번씩 들어갑니다. 이 일은 모세 때부터 예수 그리스도 때까지 약 1400여 년간 행해졌습니다. 이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 자신과 백성의 죄를 위해서 보이는 것입니다. 바로 죄 가진 인간으로서의 대제사장, 이스라엘 민족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이 이로써 보이신 것은 첫 장막이 서있을 동안에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히브리서 9:8)

한국어 성경에는 성소라고 되어있는데, 엄밀히 따지면 지성소입니다. 영어 성경에는 지성소라고 되어 있습니다. 첫 장막이 서 있을 동안에는 성소로 들어가는 길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은, 구약시대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의 상태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의지하여 드리는 예물과 제사가 섬기는 자로 그 양심상으로 온전케 할 수 없나니”(히브리서 9:9)
비유, 상징적인 의미로서 구약시대가 지나갔습니다. 무엇의 상징입니까?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만 되어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히브리서 9:10)
“개혁할 때”, 곧 새로운 언약을 세울 때까지를 의미합니다. 모세를 통해 세워진 첫 언약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세워질 완전한 언약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히브리서 9:11)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온전한 장막”은 이 장막의 실체인 하늘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계신 영원한 하늘과 이 땅을 연결하는 예수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 시대의 대제사장들은 자기 몸을 바칠 진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바친 짐승들은 육체를 바친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제물과, 그 제사를 드린 사람이 하나로 합쳐지는 것입니다. 12절,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히브리서 9:12)
짐승의 피가 아닌 하나님의 피, 예수의 몸속에 흐르고 있던 하나님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었다고 했습니다. 딱 한번 성소에 들어가졌다. 구약 시대에 대제사장은 매년 한 번씩 지성소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아담으로 오신 이 예수는 단 한 번만 들어가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생기를 불어넣으셨을 때에 우리 모두가 아담 안에서 완성되었고,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죄인으로 전락했을 때 아담 안에서 우리 모두가 죄인 된 것처럼 두 번째 아담이 한 번 죽음으로써 그 죽음 아래서 우리 모두는 의인이 되었습니다. 둘째 아담 예수는 우리 모두를 위해 단 한번 죽으셔야 했습니다.

아담이 한 번 범죄 함으로 이 세상 전체가 죄로 물들고 우리 모두가 죄인 된 것처럼, 이 세상 전체의 죄악을 한 번에 뒤집을 수 있는 힘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 안에만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염소와 송아지의 피가 아닌 오직 ‘자기’, 하나님의 피로, 일 년에 한 번씩이 아닌 영원한 속죄를 단번에 이루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