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三位一體)라는 단어는 성경에 없다. 그러나 요한복음 10장 30절에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고 했고, 이사야 9장 6절의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는 말씀, 또 요한일서 5장 20절 하반절에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고 했고, 사도행전 20장 28절에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고 했으니, 예수님과 하나님이 한 분이시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구원파가 이러한 명백한 사실을 믿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원파가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사실상 무시한다’고 주장하면서 그 근거로 설교 후 기도할 때에 간혹 ‘하나님’이라고 하지 않고 ‘주님’이라고 호칭한다는 말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논리라면 ‘하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면 삼위일체를 부인하는 이단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구약성경에 수도 없이 ‘하나님’을 ‘주님’이라고 표현했고 기성교회에서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목사들은 모두 이단이란 말인가? ‘주님’이란 단어는 예수님만을 지칭하는 단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성경을 함부로 판단하여, 그야말로 이단적인 주장을 펼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성교회는 이를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요한복음 1장 1절에는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하여 하나님이 말씀이라고 했고, 14절에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라고 기록하여 말씀이 육신을 입고 오신 분이 예수님이심을 말씀하셨다. 또한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 14:16-17, 20)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 2:22),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고후 13:13) 등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과 성령과 예수님은 삼위(三位)로 있지만 근본은 한 분(一體)이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삼위일체와 관련된 설교는 아래와 같다.

2004년 9월 11일, 히브리서 강연(25회)
그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실 때에 그냥, ‘내가 어떻다, 내가 무얼 말한다.’ 그런 내용이 아니라, 그분은 자기 자신을 스스로 있다. 더 쉽게 하면 저절로? 하나님 흉내 내려고 사람들은 자연과학을 ‘저절로’라고 붙이고 그렇게 합니다만,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분이라는 말이 있는데.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인간에게 비교해서 하나님이라고 하는 신을 부르는 것은 그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가 뭐냐 하면 하나님은 원래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하나님이신데 그분께서 인간의 몸을 쓰고 왔을 때만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인간 세상에 인간으로 왔을 때만. 그런데 그 하나님이 처음에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하나님으로 계셨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1장부터 읽어보면,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창1:26) 그렇게 이야기하셨습니다.

2006년 12월 29일, 북미지역성경탐구모임 강연(오후)
기나긴 성경의 대 장정을 한 이야기 속에 완전히 압축시켜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내용이 바로 예수께서 세례 요한에게 침례 받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성경 말씀을 통해 거듭난 사람들은 그 전에 세례를 백 번 받았어도 소용없는 것입니다. 그 후에 받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짜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모습 속에서 참 특이한 한 현상을 봐요. 뭐냐.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자세히 봐도 성령이 계신 것도 알고, 아들 하나님이 계신 것도 알고, 아버지 하나님이 계신 것도 알고, 삼위일체가 무엇인지도 알고 다 압니다만, 이 세 하나님께서 한꺼번에 나타나시는 데는 성경에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장면에서 아들 하나님은 물에서 올라오시고, 성령이 비둘기처럼 임하고, 그 다음 아버지 하나님의 음성이 동시에 들립니다. 바로 창세전에,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던 그 하나님의 마음속에 계셨던 그 엄청난 계획이 이제는 이루어지는 그 사건이 시작될 때에 바로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을 나타내실 때에”(딛 3:4) 새로운 출발점이 우리 앞에 보입니다. 참 성경은 아주 특이하게 되어 있습니다.